약 1년 전의 일이다. 내가 잡인터뷰 강연을 했을 때, 약 20명 정도 칼리지 및 대학 졸업생들이 왔었다. 그들 중엔 내 친동생 Robin도 있었다. Robin은 그 어느 누구보다 집중하는 모습이었고, 그의 눈빛엔 간절함 또한 어려있었다. 그는 내 강의에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놓칠세라 하나하나 받아 적는 모습이었고, 강의 중간에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강연이 끝나자 여느 때처럼 몇몇 학생들이 질문을 해왔고, 동생은 나를 기다리는 동안 열의에 찬 그들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하지만 강연 후의 식사자리에서 본 그의 진지한 모습은 더 이상 철부지 동생이 아니었고, 내 동생 또한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봤다고 했다. 서로의 이면을 대한 직후여서 인지, 우린 마치 형제끼리가 아닌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시 내 동생은 세미나에 참석했던 여느 학생들 보다 유독 여유가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Robin은 자신의 전공분야에서는 알만한 유명회사에 이력서가 통과되어있었고, 이미 1차 인터뷰가 잡혀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대학 재학시절, 인턴이나 코업(Co-op : 북미 지역의 대학교에서 주로 통용되는 제도. 한 한기, 혹은 두 학기 정도 실제 회사에 취직하여 실무를 경험 하면서 실제 급여를 받을 수 있고, 이와 동시에 재학 중인 학교에서는 학점이 인정될 수 있다.)을 할 시기엔 나와 주로 이에 대한 전략도 짜고, 또한 틈날 때 마다 내게 상의를 해왔던 터라, 이번 면접이 그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기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형, 나 도와줘!”
평소 장난스런 동생은 온데간데없고, 진지한 자세로 내게 자문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 시간 정도 전략회의를 했다.
Robin의 인터뷰를 대비하여 우리가 수립했던 전략을 풀어놓기에 앞서, 우선 내 동생 Robin에 대한 소개부터 해보겠다.내 동생에 관한 이야기는 성공적인 조기유학 또는 이민자 스토리가 아닌, 어느 평범한 1.5세의 스토리다. 그는 워털루 대학교에서 금융수학과 보험 계리학을 전공했다.
우리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왔을 당시, Robin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캐나다 생활 초창기, 그에겐 영어라는 어려움이 적지 않은 부담이었기에 우리 부모님은 그에게 문과보다는 이과공부를 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꼭 권유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동생의 적성이 이과에 잘 맞았는지, 그는 곧 수학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더욱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문과과목 성적은 겨우 낙제를 면하는 수준이었지만, 수학에 있어선,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받은 높은 한국식 수학교육을 덕분인지, 항상 높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현지의 교과과정을 무난히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다.
그에게 보험 계리학이란 과목은 다소 생소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꽤나 매력적인 과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여느 대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대학공부가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형, 내가 공부하고 있는 수학은 결코 ‘정석’ 수준이 아니야.”
그가 워털루 대학 1학년을 시작 하자마자 내뱉은 말이다. 보통의 캐나다 대학에선 학년을 거듭할수록 동급생의 1/4정도 낙제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고, 심지어 본인 같은 경우엔 열심히 공부를 했어도 70점(보통: C)을 넘기기는 힘들었다는 것이다. 우등생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던 Robin의 학교생활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항상 치열했으며, 때론 위태로운 순간에 놓일 때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다. 워털루대 재학 중, 처음 코업 직장을 구할 시기가 찾아왔고, 막상 이력서를 넣으면 이렇다 할 제안이 오지 않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당시 대학교 2학년생의 나이에, ‘나는 취업시장에서 상품가치가 없는 건가?’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한다. 이토록 힘겨운 심경에 둘러싸인 그와 당시에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그에게 인터뷰에 임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인, 인터뷰 준비 여부를 떠나 구직자라면 우선 ‘Entreprenuer’ 처럼 생각하고, ‘비전을 담은 상품’을 준비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그렇게 구직과 동시에 아이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렇게 잡은 첫 코업 직장이 바로 아이폰 앱 개발회사였다. Robin은 자신이 짜낸 앱에 관한 아이디어를 리포트식으로 담아 회사로 가져갔다고 한다. 회사 측에선 굉장히 감탄했고, 평사원들에게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노력을 코업 학생이 했다며 무척이나 기특해 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의 첫 코업 직장은 순조롭고, 나름대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첫 코업 직장 이후, 그는 자신만의 경쟁력 있는 무기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보험 계리학도로서는 다소 독특하게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인 ACCESS프로그램을 배우기 위해, 수개월에 걸쳐 컴퓨터학원과 독학을 병행하며 공부했다. 첫 코업 직장 경험과 더불어 이젠 컴퓨터 프로그래밍 실력까지 겸비하자, TD은행에서도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마지막으론 RGA라는 북미에서는 손꼽히는 보험회사에까지 코업으로 취직하였다. 이렇게 적어도 대학 4년간의 그의 코업 성과는 실로 훌륭했다.
그러나 정작 졸업 후 3개월, 재학 시절 동안 의기양양했던 Robin의 모습은 사라졌고, 어느덧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그는 또다시 시련을 맞게 됐다. 이제는 대학교의 울타리에서 직업 체험 식으로 직장을 구하는 것이 아닌, 전문지식을 보유한 학사출신으로서 자신의 브랜딩을 표출해야 할 타이밍인 것이었다. 수도 없이 이력서를 냈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극히 드물었고, 그나마 다행인건 자신이 준비하고 있던 곳에서 인터뷰 제안을 받은 것이다.
그는 우선 내게 고백할 것이 있다며 다소 의기소침하게 말을 꺼냈다. 본격적인 전략회의에 앞서 자신이 갖고 있는 약점을 먼저 털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Robin의 말에 의하면, 대학 4년 동안 코업, 보험 계리학 인증시험,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공부 등 학업 외의 활동들로 인해 정작 학교공부는 소홀히 했다고 한다. 그는 말없이 성적표를 내보였다. 내가 본 그의 성적은 정말 처참했다. 한국의 대학교 성적 시스템을 빌리자면 2.0, 다시 말해 C도 안 되는 성적이었다. 더 큰 문제는 회사 측에서 인터뷰 때 대학 성적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크게 당황했지만 일단 동생에게 용기를 주었다. 물론 성적이 낮은 건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를 보완할 아무런 대책 없이 이대로 면접장으로 향하게 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극복을 위한 어떠한 노력의 산물이라도 제시를 한다면, 뜻밖의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내 조언이었다.
일단 회사부터 제대로 파악하자!
“형, Berkshire Hathaway라고 알아?”
처음 들었을 땐 익숙하지 않은 회사였다.
“그럼, 워런 버핏은 누군지 알지? 바로 그 워런 버핏의 회사야.”
Robin이 회사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 동안 나는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찾은 정보만으로도 내 입은 이미 떡 벌어져 있었다. Berkshire Hathaway는 워런 버핏이 운영하는 지주회사로 시가총액이 무려 4800억불이나 되는, 사실상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주식회사이다. 물론 Berkshire Hathaway란 이름은 생소하지만 그 회사가 운영하는 자회사가 무려 500개나 되고, GEICO(미국 유명 보험회사)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American Express나 Coca-Cola와 같은 대기업에 소주주로도 현재 참여하고 있다. 이런 회사에 이력서가 통과됐다니, 순간 잘 믿기지도 않을뿐더러, 내 동생이 대견하게 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 세 군데의 코업 실적, 인증시험성적, 그리고 컴퓨터프로그래밍 실력에 대해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다짜고짜 대학교 성적부터 왜 이렇게 낮은지 물어보면 어떻게 하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에서 어느 정도로 심적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는 동생에게 반문했다.
“너는 네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않니? 그렇다면 Berkshire Hathaway라는 회사에 대해선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순간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고는 www.berkshirehathaway.com를 가보면 세계 5대 주식회사와 걸맞지 않게 웹사이트가 초라하기에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그렇게 많진 않다고 변명할 뿐이었다.
“웹사이트에 나온 정보는 단지 너만 아는 정보가 아니라, 이미 모든 사람들이 다 접근할 수 있는, 이를테면 공식정보나 다름없어. 그렇다고 일부 관계자들만 아는 일급 정보 수준까지 파악하라는 뜻은 아니야. 다만 Berkshire Hathaway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가 생각하는 그 회사에 대한 Rationale(존립 목적) 정도는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지.”
이 같은 이야기를 듣자, Robin은 처음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어려워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내가 면접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내는 30문항의 문제를 토대로 우린 예행연습을 하였다. 우선 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Why do you want to work for Berkshire Hathaway?” (왜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 싶으시죠?)
첫 질문에 동생은 잘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어느 누구도 같은 입장에 놓이게 되면 생각만큼 선뜻 답을 내놓진 못할 것이다. 예를 들면, 항공사에 지원하는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인사과 담당자가 ‘왜 아시아나 항공에 지원하고 싶으십니까?’라고 질문한다면 학생의 과반수 정도는
“평소에 여행을 즐겨 할 정도로, 여행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우린 이 대답이 오답 중의 오답이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엔 어떻게 답할 텐가?
“왜 대한항공이 아닌 아시아나항공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의 경우, 이 역시도 대답하기에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준비되어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당신(피면접자)은 왜 우리(회사)를 좋아하는지?’인가, 아니면 ‘우리(회사)가 왜 당신(피면접자)을 좋아해야 하는지?’ 인가.
‘왜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내포된 의미는 결코 당신이 그 회사에 갖는 ‘단순한 선호의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그 회사가 대체 ‘당신’을 왜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다른 회사도 아닌, 하필이면 ‘우리 회사’에서, 그것도 ‘다른’ 피면접자가 아닌 유독 ‘당신’을 좋아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신의 비전을 담아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라는 것이다.
나는 동생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의 핵심적인 의미를 분석해보고 정리할 것을 권했다.
‘그 회사가 다른 회사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왜 다른지?’ 또한 ‘네가 다른 피면접자들과는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왜 다른지?’
결국 당신이 가진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토록 특별하게 만들기에, 궁극적으로 회사가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을 뽑아야 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미사여구만 장황하게 늘어놓으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회사가 피면접자에게 듣길 원하는 것은 Speech Sweetener(꾸며주는 말), 즉 형용사, 부사가 아니라 결국 명사와 동사인 것이다. 예를 들어, 단순히 ‘많다’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쓰는 것이 아닌, ‘숫자’, 즉 ‘정확한 수치’를 사용하고, 또한 구체적인 이유를 표현해 낼 수 있는 단어나 행위, 상황 등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날 이후 동생은 누구보다 열심히 인터뷰를 준비했고, 나와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 꼬박 실전처럼 연습해 나아갔다. 그가 준비한 답변들은 점차 다듬어져 갔고, 내용 역시 견고해졌다. 더욱이 불필요한 미사여구는 빠진 채, 근거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숫자들이 그의 답변 속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Robin은 하루에 1시간 이상씩 Berkshire Hathaway의 신문기사들을 읽고 스크랩을 했다. 이러한 작업이 바로 ‘우리 회사’에 대한 리서치였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 대한 정보 파악이 어느 정도 됐다고 판단될 때 즈음, 나와 다시 대화해보자고 말했었는데, 예상보단 조금 일찍 동생이 다시 찾아왔다.
“이젠 다 된 것 같아.”
그동안 동생이 준비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우린 또 다시 리허설에 들어갔다.
“Did you bring your transcript? Can I see the transcript?” (학교 성적표를 볼 수 있을까요?)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첫 질문에 동생의 약점인 학교 성적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동생은 내가 일부러 곤란한 질문을 던진 것이란 생각에 짧은 순간이지만 상당히 불쾌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실제 면접에서 처음부터 이 같은 질문을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대체 이런 질문에선 어떻게 대처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럼 당연히 떨어지는 거지.”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일단 겸허히 인정하고, 너의 ‘비전아이템’으로 결판을 내자.”
아직 비전 아이템은 완성이 되지 않았고, 심지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는 동생의 말에 나는 이제 ‘비전아이템’에만 집중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한 가지 더 당부한 것이 있다면,
“그리고 절대 비전아이템을 보여줘서는 안 돼!”
면접 당일이 되었다. 동생은 먼저 인사팀과의 면접시간을 가졌고, 초반 20분 정도는 스크리닝이 진행됐다. 곧이어 인사과 담당자, 그리고 지원하는 부서의 책임자와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심도 있는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당황하기 보단, 수많은 연습이 큰 도움이 되어 누구보다 침착하게 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얼굴에서 일말의 미심쩍은 표정을 읽을 수 있었던 Robin. 순간 자신의 초라한 성적표 때문이라는 생각이 스쳐서 인지 그는 그 자리에서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형은 절대 비전아이템을 보여주지 말라고 했지만, 에라 모르겠다. 그냥 보여주자!’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해보라는 면접관의 말에 바로
“혹시 Berkshire Hathaway의 회사들은 어떤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을 쓰죠?”
라고 물으며 Robin은 자신의 비전아이템을 소개하기 위한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다. 물론 그들은 예상 밖의 질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Robin의 비전아이템을 본 면접관들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고 한다.
동생은 직접 들고 간 노트북을 꺼내 그의 비전아이템을 소개했다고 한다. ACCESS를 통해 제작한, Berkshire Hathaway 산하 500여개의 자회사들의 위험성, 위험요소, 우량회사, 비우량회사를 평가하는 ACCESS 데이터베이스를 보여주었던 Robin.
면접이 끝난 후 우린 또다시 Debriefing회의를 가졌다.
“내 비전아이템을 보여줬어야 했어. 미안해 형...”
그때서야 난 동생을 2주가량 꼬박 밤을 세게 한 그 비전아이템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학생을 접한 나로서도 결코 보지 못했을 정도의 상당한 완성도와 견고함이 응축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해당 회사의 목적성을 이해하고 ‘어떤’ 일을 ‘어떻게’, ‘왜’ 하는 지를 파악하며, 그 회사의 5년 혹은 10년 후 미래를 자신이 직접 설계해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제품 – 즉 비전아이템을 Robin은 보여준 것이다. 난 동생이 틀림없이 합격할 것이라 장담했다.
그는 대체 어떠한 이유로 면접 때 자신의 비전아이템을 보여주지 말 것을 조언 했는지 내게 물었다.
“생각해봐. 네가 어떤 여자와 처음 데이트를 하고 나서 정말 마음에 들어 그녀를 위해 2주 동안 밤새며 선물을 준비해서 그녀 앞에 나타났다면?… 그녀가 과연 너에게 마냥 좋아하는 마음만 들 수 있을까? 다른 한편으론 너무 많은 부담이 되진 않을까?”
“아,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형, 난 적어도 이번 인터뷰에서 만큼은 후회는 없어.”
그는 담담했고, 우리는 한편으론 기대를, 또 다른 한편으론 침착함을 유지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게 한 달이 흘렀건만 Berkshire Hathaway에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초반에 한껏 들떠있던 마음도 2주 정도 지나자 어느덧 절망으로 변해버렸다. 이를 지켜보던 나까지도 걷잡을 수 없는 좌절감에 힘들 뿐이었다. 정녕 나로 인해 동생이 2주 동안 밤새며 고생해 만든 프로젝트는 결국 헛수고였단 말인가?
무겁고도 허탈한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던 어느 날, 드디어 Berkshire Hathaway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고대하던 2차 인터뷰 통보였다. Robin은 부푼 기대를 안고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 Berkshire Hathaway의 Branch Manager와 가볍게 커피 한 잔을 곁들인, 그리 무겁지만은 않은 인터뷰 자리, 그 둘은 일에 관한 심각한 대화가 아닌, 그저 가볍게 스포츠에 관한 이야기 정도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바로 다음 날, 동생은 Offer Letter를 받았다. 심지어 웬만한 경력사원과 견주어도 상당할 정도로 높은 연봉이 적힌 편지였다. 그날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던 동생의 모습이란 너무나도 당연했으리라.
최종합격 축하와 본격적으로 사회의 첫발을 내딛는 예비 직장인을 격려하기 위한 동생과 나의 조촐한 식사 자리. 우린 대체 어째서 한 달 동안이나 연락이 오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나 또한 내가 일하는 곳에서 구인광고를 내면 하루에 적어도 15통 이상의 이력서를 받긴 한다. 그렇다면 Berkshire Hathaway란 곳은 과연 어느 정도의 이력서를 받을까? Actuarial science란 전공분야는 2004년도부터 북미지역 동양계 대학생들에게 유행처럼 번졌다는 것쯤은 웬만한 대학생이라면 다 알 것이다. 또한 워털루 대학, 토론토 대학부터 미국 유명대학 학생들 또한 같은 자리에 지원했다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성적이 좋은 명문대생이라도 Berkshire Hathaway란 곳에 본인이 만든 비전아이템을 이처럼 멋지게 선사하진 못했던 것이다.
정말 이 정도까지 해야만 취직할 수 있는 것일까? 당시 잡인터뷰 강연에 왔던 20명의 참석자들과 그 이후로 지금껏 연락이 닿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 중 몇 명이나 본인이 원하는 직장에 취직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마음으로 나마 그들이 원하는 대로 꿈을 성취할 수 있길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 당시 학생들 중에서 Robin의 눈에서만 간절함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자신의 ‘비전아이템’을 만들기까지의 동기가 뚜렷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뷰에 임하기에 앞서 자신이 일하고 싶은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그의 자세는 이제 자기의 분야인 Actuarial Science에 대한 헌신적인 마인드로 거듭날 것이다.어느덧 1년차 경력 사원이 된 내 동생, 이번 글을 쓰기에 앞서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를 만났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에게 건 낸 질문,
“네 경험을 통해 봤을 때, 잡인터뷰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내용이 담긴 키워드는 뭐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진심!”
자신의 간절함이 진심으로 나타난 결정체인 비전아이템을 가지고 도전한다면, 아무리 큰 회사의 면접도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